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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건설, 22년만에 ‘남극 신화’
세종기지 건설 이어 22년 만에 장보고기지 건설도 맡아
현대건설이 22년 만에 또 다시 ‘남극 신화’ 창조에 나선다.

현대건설은 제2 남극기지(장보고과학기지) 건설의 현장 정밀조사를 위해 학․연․산 전문가 30여명으로 구성된 조사단과 함께 27일(목) 쇄빙 연구선 ‘아라온’을 타고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해 남극으로 향했다.

2월 3일부터 15일까지 13일 동안 진행되는 이번 남극현지 조사는 지난해 1월 남극기지 후보지 선정을 위해 실시된 사전조사에 이은 두 번째로, 시공에 앞선 최종 조사인 만큼 보다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탐사에는 건설부지 지반조사를 포함해 인근 해역 수심 조사 등 기지건설을 위한 제반사항 조사가 포괄적으로 진행될 계획이며, 이와 함께 남극조약협의 당사국 회의에 제출할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른 환경조사도 함께 실시된다.

현대건설은 지난 1988년 세종과학기지를 완공한 데 이어, 이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최첨단 친환경 명품의 ‘남극 제2 과학기지’(2014년 완공 예정)를 건설하게 됨으로써 불굴의 도전과 개척정신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현대건설의 ‘남극 신화’ 창조는 1987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남극 연구기지인 ‘세종기지’ 건설에서 이미 시작됐다. 세종기지 건설은 한 마디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현대건설의 프런티어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 공사였다.

1987년 당시 대통령 특명으로 시작된 ‘세종기지 건설’은 처음부터 낯섦과 어려움과의 싸움이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얗게 쌓인 눈밖에 없는 남극. 거기에 남극 연구를 전담할 세종기지를 건설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종기지는 남극대륙 북쪽 사우스셰틀랜드제도의 킹조지섬 맥스웰만(Maxwell Bay)에 있는 한국 최초의 남극 과학기지로, 현대건설이 1987년 11월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중공업과 함께 일괄도급으로 수주해 시공했다.

1987년 당시 건축사업본부 부서장(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은 세종기지 건설의 전체 마스터플랜을 짜야 했다. 장비 및 인력 동원, 생필품 이송, 구조물 설치 등 챙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미리 한 번 가보기라도 했으면 좋을 텐데….’

남극 현장 답사는 마음만 간절할 뿐 실행할 수 없었다. 남극은 사람의 접근을 쉬 허락하지 않는 미지의 땅이었다. 김중겸 사장은 남극 시공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없었기에 막막하기만 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4개월만 공사를 할 수 있기에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2월 이후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이 닥치기 때문이다.

김중겸 사장은 “당시 우리나라는 남극에서의 공사 경험이 없었을 뿐더러 남극에 가본 사람조차 없었다. 극지 시공 경험이 전무했던 당시 상황에서 대규모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공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고민과 어려움의 연속이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혹독한 극지 공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짧은 공기와 더불어 제반시설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현지 상황을 고려해 미리 가설한 구조물이 바지선에 실렸고, 고장에 대비해 여벌 장비까지 챙겼으니 짐이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200여명의 생필품까지 더해진 거대한 물자 수송은 시공 전부터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1987년 10월 3,000톤의 바지선 HHI-1200호에 선적된 기자재와 물품은 50여대의 컨테이너와 30여종의 건설장비를 포함해 부피가 1만5,000m3에 달했다.

세종기지 건설 공사는 영하의 추위와 초속 42m로 몰아치는 강풍과 풍랑 속에 온갖 위험을 감수하며 시작됐다. 바지선을 이용해 가설부두를 세우는 작업부터 내구성과 보온성을 고려해 세운 연구시설, 환경을 생각한 오폐수 처리시설과 폐기물 소각시설, 그리고 연구원들의 생활을 고려한 담수화시설까지 현대건설의 시공 노하우가 모두 집약됐다.

건설 전체 마스터플랜을 짠 부서장으로서 준공 때까지 하루도 편안한 잠을 자지 못했다는 김중겸 사장은 “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 치의 오차라도 생겨 차질이 생기면 200여명의 현장 직원들이 오지에 갇히게 된다.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건설에서의 도전은 언제나 ‘미지와의 조우’였지만, 어려울수록 현대건설의 프런티어 정신은 유감없이 발휘됐다”고 밝혔다.

1988년 2월 17일. 현대건설은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본관동, 연구동, 숙소, 중장비 보관동, 발전동, 관측동, 정비동 등으로 이루어진 세종기지 건설을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극 신화’가 창조된 것이다.

<강주남 기자 @nk3507> nam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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